아파트의 영을 대적하라
[218호 특집 아파트의 영을 대적하라]아파트의 영을 대적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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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위험한 책이다. 성서를 잘못 읽으면, 아니 제대로 읽으면 한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와 국가, 역사마저도 뒤엎을 수 있는 거대한 힘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이 거대한 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수단으로도 절대 막을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두나미스(능력)다. 그래서 성서는 위험한 책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만일 우리가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이 위험한 책을 ‘위험하게’ 읽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두나미스가 우리의 인생과 이 사회, 문화, 그리고 우리의 조국을 통치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자, 우리 한번 위험한 성서 읽기를 시도해보자. 마가복음에 나오는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를 찾으신 예수의 이야기를 어느 아파트촌에서 살아가는 한 신자를 찾으신 예수의 이야기로 바꾸어 읽어보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 지역에 이르러 마을버스에서 내리시매 허다한 무리가 아파트 건물 아래 모여 있는지라. 아파트 건물 옥상에서 한 소녀가 괴로워하며 뛰어내려 제 몸을 상하게 하려는지라. 소녀의 부모가 예수께 엎드려 간구하거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 딸이 귀신 들렸나이다.” 그 소녀는 아파트에 거처하는데 밤낮 제 방에서 울며 홀로 거하다가 욕실에서 목을 매려 하거나 연탄을 피워 스스로 죽으려 하되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는지라. 예수께서 멀리서 소녀를 바라보시니 그가 소리 질러 가로되, “선생이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컨대 나로 이곳에서 뛰어내려 나의 괴로움을 그치게 하옵소서. 구하오니 더는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저에게 이르시되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이에 물으시니 “네 이름이 무엇이냐?” 가로되 “내 이름은 아파트니 이는 집이 많음이니이다”하고. 아파트 귀신이라… 좀 섬뜩하다. 탈마법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는 성서 시대에 귀신이라는 말이 의미했던 그 모든 뉘앙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의학과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성서 시대의 사람들이 귀신이라고 불렀던 많은 것들을 다른 식으로 부르는 데 익숙하다. 가령 신경증이나 노이로제와 같은 정신과 소견들로부터 자본주의와 같은 경제 시스템, 국민국가 체제, 대중매체와 그것들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각종 콘텐츠를 마귀나 귀신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상당히 거북하다. 그러나 성서 시대의 사람들도 우리와 같았으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바울은 에베소서 6장에서 하나님나라의 질서에 대항하는 세력들로 정사(아르케), 권세(엑수시아),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코스모크라토르),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프뉴마티코스)을 열거하고 있다. 이러한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바울이 말하는 마귀나 귀신은 <전설의 고향>과 같은 납량특집에서 머리 풀고 소복 입고 나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동인들을 뜻한다.
아파트의 공기는 차갑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는 마귀다. 아파트 대단지 정문 앞에 한번 서보라. 거대한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분명 우리나라 아파트의 대단지에는 사람과 돈, 권력이 집중해 있다.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니까 강남의 60제곱미터 아파트 한 채로도 유럽의 어느 성채를 살 수 있단다. 그런 아파트가 수천 채라니. 이는 분명 대단한 힘이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조세․건설․부동산 정책들은 이 아파트를 의식하며 결정한다. 우리나라를 지금 이 모습대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이 바로 아파트다. 이 점에서 아파트는 정사고 권세다. 아파트는 참 기묘하다. 겨우 벽 하나를 두고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산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사람들이 가깝게 붙어 살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그러나 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집은 지구 이 끝에서 저 끝만큼이나 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그냥 저절로 그렇게 된다. 아무도 그래야 한다고 법으로 정하지 않았는데 다들 그렇게 산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킨 뭔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근사하게 표현해서, ‘아파트의 문화’라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 아파트 문화가 서로의 관계를 끊게 하고,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만들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게 할 때 점점 귀신이 되어간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귀신에 사로잡혀 긴장과 분노․불안․두려움․염려․상처․외로움 가운데 산다. 그런가 하면 아파트 귀신에 사로잡힌 또 많은 이들은 하나님 없는 자족함․부요함․교만에 사로잡혀 산다. 그래서인가? 왠지 아파트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기계 부품이 조립되어 있는 곳 같다. 아파트 공기는 더 차게 느껴진다. 쾌적함과 산뜻함, 세련됨으로 포장된 아파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슬퍼하고, 외로워하고, 두려워하고 있다. 그리고 또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스스로 제 몸을 상하게 하며 목숨을 끊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아파트 귀신 쫓는 방법, 사마리아인 되기 이런 점에서 아파트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교회가 들어가야 할 곳이다. 교회성장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아파트촌은 노다지 지역이다. 맥가브란식으로 말하면 추수지역이고, 로버트 슐러식으로 말하면 목이 좋은 곳이다. 이유는 굳이 말 안 해도 다 알 테지만, 아파트촌은 교회에 출석할 잠재적 교인이 많으며, 잠재적 헌금 액수도 많고, 접근성도 쉽고, 엘리트층이 많이 산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아파트를 노다지라고 본다면 교회도 아파트 귀신 들린 것이다. 정말로 교회가 아파트로 들어가야 할 이유는 그곳에 외롭고, 상처입고, 슬픔이 많으며, 이생에 매여 죽기를 두려워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때문에 교회가 아파트촌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은 아파트 귀신을 내쫓는 것이다. 그러나 오해는 말라. 아파트 이곳저곳에 십자가 부적을 붙이고, 땅 밟기 기도를 한답시고 새벽마다 무리지어 돌아다니라는 말이 아니니 말이다. 아파트 귀신을 내쫓는 방법은 이웃이 되는 것이다.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과 레위인은 ‘못 본 체’했다. 못 본 체하는 것은 이웃됨이 아니다. 그러나 착한 사마리아인은 본 체하고, 다가갔고, 어루만졌으며, 치료하고, 먹여주었다. 이것이 교회가 아파트 귀신을 대적하고 내쫓는 가장 탁월한 방식이다. 교회가 서로 못 본 체하는 아파트 사람들을 불러다가 교회 안에서도 못 본 체하게 만든다면 어찌 이것을 교회라 할 수 있으랴. 아파트촌 교회가 해야 할 제자 훈련은 성경 암송이나, 성경 공부, 외판원식 방문 전도가 아니라 서로 아는 체하기, 다가가기, 어루만지기, 위로하고 치유하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는 것, 바로 이것이 교회가 해야 할 제자 훈련이요, 그리고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아파트 귀신을 내쫓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주께서는 하늘에서 우리를 못 본 체하지 않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어주셨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